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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 리베카 솔닛 | 세대도, 국적도 뛰어넘은 경험문화생활/책 2022. 12. 11. 22:34반응형
✔ 이 책을 200% 즐기기 위해 아래와 같은 배경지식이 있으면 좋다.
- 리베카 솔닛의 전작 (일부 혹은 전체)
-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리 및 역사
- 미술사
- 솔닛과 동시대를 살았던, 솔닛과 교류했던 명사들
나는 이러한 지식들이 부족해 책을 200% 즐기지 못한 듯해 아쉬웠다.
솔닛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의 저자라는 것뿐이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완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반전, 반핵, 페미니즘, 성소수자 인권 등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에 수반되는 수많은 반박과 좌절들을 경험하였을 텐데도
이 사회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점이 신기했다. (<어둠 속의 희망>이라는 제목의 책을 쓴 사람답다.)
한편으로는 그런 애정과 희망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
- 샌프란시스코와 작은 집에 대한 애정
- 솔닛의 작업대가 되어준 화장대 같은 책상과 그것을 선물한 친구 이야기
- 게이 친구와의 우정
- 솔닛이 여성으로서 겪은 불쾌한 경험들
- '신뢰성(credibility)' + 가청성(audibility), 영향력(consequence)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
- 글쓰기에 대한 애정
- You're too driven. / You're parked.
- Despite everything
- 솔닛의 강한 자아
+ 직간접적으로 불유쾌한 경험을 하게 한 명사들의 이름을 노빠꾸로 밝히는 것
✔ 일부 발췌
"…세상은 젊은 여자들에게 "자신이 살해될 가능성을 늘 그려보게끔" 만든다. … 많디많은 여성이 영화에서, 노래에서, 소설에서, 세상에서 살해되었다. 그 죽음 하나하나가 내게는 작은 상처, 작은 짐, 피해자가 나일 수도 있었다고 말하는 작은 메시지였다. …살인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여성의 시체를 내보이는 장면이 표준적인 플롯 장치이자 미학적 오브제가 될 지경이었다. …여자는 사실 시체가 되기 전부터 죽어 있었다. 여자는 겉치레였고, 딸린 것이었고, 액세서리였다. …'냉장고 속 여자들(Women in Refridgerators)'…'프리징(fridging)'… (pp.65-70)"
"나의 자유는 걷기였다. 걷기는 나의 즐거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교통수단, 장소를 이해하는 방법,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 내 삶과 글을 통해서 생각하는 방법, 내가 선 위치를 아는 방법이었다. 안전하지 않으니까 걷기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지만, 나 대신 다른 사람들이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권했다. 죄수가 되라고.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은둔자처럼 처박혀 있으라고. (p.79)"
"…나는 그 신뢰성을 얻고자 싸워야 했다. 내가 사건을 상당히 정확하게 인식할 줄 아는 사람임을 사생활에서도 일에서도 남들에게 설득시켜야만 했고, 반복된 그런 경험은 내 안에 자기 의심의 씨앗을 심었으니 그 싸움은 남들과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p.211)"
"특정 기상 현상이 기후변화 때문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기후변화가 기상의 전반적인 경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별도 그렇다. 어떤 특정 사건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상대의 태도에서 비롯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건이 누적되면 그로부터 분명한 패턴이 드러난다. (p.211)"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해냈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경이나 장벽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혹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글고 만약 무언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다른 곳에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야 하고, 그래서 지치고 불안해진다. (p.218)"
"그는 내게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그 사람들은 점잖은 중산층 가정이었다고, 따라서 남편이 아내를 죽이려 했다는 말은 여자가 남편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외치면서 집을 뛰쳐나온 데 대한 설명으로서 믿을 만하지 않다고, 오히려 여자가 정신 나간 거라고… /어떤 사람이 그의 전문 분야에서 무능하다고 치부하는 사고방식은 그에게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드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능력조차 없다고 치부하는 사고방식과 같은 것일 수 있고, 이런 사고방식 떄문에 많은 가정폭력 및 스토킹 피해자들이 죽었다.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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