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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구 끝의 온실 - 김초엽 | 디스토피아 같기도, 동화 같기도 한 이야기. 마치 모스바나처럼.문화생활/책 2023. 1. 17. 23:12반응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유명한 김초엽 작가.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특이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SF 신예 작가로 알려졌지만, 웅장하고 탄탄한 세계관을 자랑하는 그런 딥한 SF 느낌은 아니고, 요즘 트렌드인 감성 담뿍 한국 문학에 SF 소재를 가미한 느낌이다.
아마 장르소설 팬들의 인정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렇듯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으리라.
(어차피 장르소설 매니아들은 '마이너함'에서 덕질의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니..)
나만 해도 쉽게 읽힐 것 같지 않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며가며 자투리 시간에 읽을 책이 필요했고, 두께나 무게가 모두 소지하기 적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쓴 작가의 장편소설이 궁금했다.
강경장편파인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 책에 수록되었던 어떤 이야기의 파편들이 흥미롭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쁘지는 않은데, 괜찮은데, 좀 김 새는 느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단편으로 끝나서 아쉬운 이야기들이 조금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장편으로 발전시키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서 좋지만.
그건 장편에 대한 내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난하게 괜찮았다.
끝이 약간 허성성하게 끝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결말을 너무 꽉 닫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라고 이해해보는걸로..
개인적으로 앞서 말한 용도에 딱 걸맞은 책이어서 만족스러웠다. 몰입해서 읽어도,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적당히 술술 잘 읽히고 질리기 전에 끝나는 책.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이 숲이고 온실인 거야." …"그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나요?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면, 그러면 그때는요." …그 짧은 침묵을 통해 나는 지수 씨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만큼 지수 씨는 나를 존중했다. (pp.242~243)
나오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도 위의 점들이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나오미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수많은점들의 이름을. (p.364)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도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p.385)
- 여성들의 연대가 좋다.
- 그래서 하루는..?
- '이희수 씨=지수 씨'라는 게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재미 포인트일 수도 있지만.
- 지수 씨는 빼앗길 게 없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지만, 호버카도 있고 약간의 식량 내지 생필품이나마 있었을 텐데..
그리고 생존 비결이었다던 정비 기술 역시 그를 가두고 착취해서라도 탐낼 만한 자원이 아니었을까.
지수 씨도 그렇고, 나오미와 아마라도 그렇고, 프림 빌리지에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간 다른 주민들도 그렇고, 레이첼도 그렇고, 살아남은 게 신기하다.
- 그래, 적당히 동화같은 엔딩을 위해서는 적당히 동화같은 전개도 필요하겠지.
- 식물 이야기인 것도 좋다.
인간의 인간중심주의와 자아비대증은 주기적으로 치료해줘야 한다. 치료가 될지 의문이지만.
- 작가의 이력 때문인지 따뜻하게 그려낸 연구의 보람이나 연구자들의 연대 역시 눈에 띈다.
- 영상화.. 어떻게 되려나.
왠지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데.
- 레이첼과 지수는 둘 다 좀 섹시한 것 같으면서도 답답하다. 식물/기계밖에 모르는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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